제주에 살던 한 할아버지는 생전 가족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남겼다.
“장례는 꼭 집에서 치루자.”
가족들은 그의 뜻을 존중해 죽음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인 ‘집에서 죽고 싶다’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병원은 퇴원 직후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집이 아닌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임종 직후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르며 약속을 지켰다.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
장례는 일반적인 빈소와 달랐다.
평소 생활하셨던 공간인 안방에 할아버지를 눕히고, 정성껏 단장한 뒤, 꽃관을 만들어 안치했다.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집도 조금씩 변해갔다. 거실을 깨끗이 청소한 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남긴 노트와, 사진 등의 유품들을 전시했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했던 고인을 떠올리며 마을 사람들은 부의금 대신 꽃을 들고 찾아왔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 온 꽃들로 거실은 꽃집처럼 가득찼다. 그곳에는 정해진 식순도, 사회자도 없었다.
누군가는 춤을 추었고, 누군가는 좋은 글을 낭독했으며, 또 다른 이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으며 고인을 추모했다.
현장에서 함께한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전승욱 이사는 “지금까지 약 80~90건 정도의 장례를 진행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나다운 방식’의 장례였다”고 말한다. 또 “일반적인 장례는 3일만 해도 힘든데,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충분히 나눌 수 있어 너무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장례는 충분히 기억하고 애도하며 5일간 이어졌다.
장례가 끝난 뒤, 가족들은 유골을 집 정원의 먼나무 아래에 뿌렸다. 그렇게 고인이 정성껏 가꾸던 정원 곁에 머물게 된것이다. 서클 댄스를 즐겼던 고인을 위해 동호회 회원들은 나무 앞에 두 세겹으로 원을 만들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혈연 밖의 공동체 상상하기
전승욱 이사는 “죽음은 단순히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가 존중되고 삶을 함께한 사람들과 연결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나다운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가 현실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씁쓸함을 표현했다. 협동조합 아파트에 거주하며 다양한 마을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 이사는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적인 관계를 많이 경험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그 비율은 매우 낮다”며 “우리나라는 공동체가 사실상 무너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에는 하카토모(墓友)라는 새로운 공동체도 있다. 이 모임을 주선하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참여자들은 일 년에 수차례 함께 식사하고 여행을 떠나며 생전부터 깊은 관계를 쌓는다. 죽음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며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전 이사는 이러한 모임이 97%의 높은 출석률을 보일 만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좋은 죽음은 일상의 관계망에서 시작된다
‘상실을 경험한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하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는 최경옥 대표(더채움교육복지 연구소)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기에 삶은 충분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죽음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떠난 뒤에도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존엄한 이야기로 남게 된다.”고 말한다.
제도는 장례행정을 대행할 순 있어도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까지 대신할 수 없다. 죽음을 다시 삶 안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서로를 기꺼이 돌보고 기억해 줄 공동체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고독한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결국 ‘관계망’을 만드는 것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