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시죠?”
“담배 냄새는 싫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담배 피우러 간다고 하면 저도 같이 나가요.”
성공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A씨는 비흡연입에도 흡연구역에 따라나서곤 한다. A씨 뿐만이 아니다. 점심시간 중앙도서관 뒤 흡연구역. 수업이 끝나거나 팀플이 잠시 멈추면 학생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그들 사이에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뿐 아니라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왜 굳이 담배 냄새를 맡아가며 흡연장까지 따라가는 걸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담배 연기보다 무서운 건 대화에서 소외되는 것”
비흡연자 대학생 B 씨는 동기들이 “담배 피우고 올게”라고 일어서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같이한다. B 씨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고, 담배를 피울 생각도 전혀 없다”면서도 “하지만 안 따라나가면 방금 전까지 하다가 멈춘 얘기들이 흡연장에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강의실에 혼자 남아 있느니 차라리 간접흡연을 택한다”고 털어놨다.
팀 프로젝트 조장을 맡고 있다는 대학생 C 씨 역시 비슷한 고충을 토로했다. C 씨는 “조원 5명 중 4명이 흡연자인데, 회의 도중 흐름을 끊고 흡연장에 갈 때가 많다”라며 “조장 입장에서 회의 내용이 흡연장에서 이어지고,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오는 게 싫어서 쫓아간다”고 했다.
D 씨는 “솔직히 혼자 있을 때는 맛도 없고 몸에 나빠서 굳이 피우지 않는다”라며 “하지만 팀플이나 과제를 하다가 친구들이나 학과 선배들이 담배 피우러 가자고 할 때 같이 나갔다가, 혼자 뻘쭘하게 서 있는 게 뭐 해서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선임이 가자는데 거절할 수가 없어서..”
E씨는 “입대하고 처음에 적응이 조금 어려웠다. 그러다 동기가 ‘선임이랑 친해지려면 담배를 배워야 한다.’ 권해서 피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 “선임들이 가자고 하면 거절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여서 담배를 안 피워도 흡연장은 따라가는 후임들도 많았다.”라고 말한다. 그는 복학 후 다시 한번 거절의 어려움을 느꼈다. E씨는 복학 후에도 선배들의 권유 앞에서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복학하고 담배를 끊고 싶었지만, 선배들이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고 할 때 안 간다고 말하는 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결국 따라나가다 보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 됐다고 했다. “복학생이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막상 다시 피기 시작하니 처음 보는 사람들과 금방 통성명을 하게 되더라.”라고 전했다.
■ “남학생들은 담배로 친해진다..?”
F씨는 “남초과인 학과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였다”며 “새내기 때 보니까 남자애들은 어색한 사이 여도 담배 피우러 같이 나가면서 금방 친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만 안 나가고 남아 있으면 자기들끼리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따라나서기 시작했다”고 했다.“그렇게 같이 다니다가 한두 개비씩 받아 피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저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게 됐다”고 말했다.
■ “담배?”
G 씨는 “술자리에서 한창 얘기 하다가 흡연자 한명이 ‘담배?’라고 하면 우르르 나가 버린다”라며 “비흡연자이기에 자리에 남았지만 초면이거나, 어색한 사람끼리만 자리에 남는 경우도 생기고, 혼자 남기도 하고…(중략) 밖에서 자기들끼리 웃음소리가 들리면 ‘나 빼고 더 재밌는 얘기 하나’ 싶어 괜히 소외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더 웃긴 건 걔네가 담배 피우고 들어오면 꼭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로 대화를 이어간다”라며.. 그게 싫어서 언제부턴가 술자리에서는 그냥 같이 나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 “담배 피우며 배우는 회사 생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H씨는 “흡연장에서 업무 이야기뿐 아니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해지 는 경우도 있다. 회사 뒷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오간다”며 “흡연장이 사내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비흡연자였던 동기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직장 선배들이 틈만 나면 담배 피러 가자고 해서 억지로 나간 적도 많았는데, 궁금한 것도 많이 물어보고 친해질 수 있어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2012년 STX조선해양이 임직원 1,2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흡연 실태 조사에 따르면, ‘흡연이 사내 인간관계에 유리하게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사원·대리급 직원의 과반수가 넘는 53%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과장·차장급은 46%, 부장·임원급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은 28%로 뚝 떨어진 사례가 있다.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흡연’
이러한 사례들을 보편적인 사회 현상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그러나 흡연이 가진 비공식 네트워크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흡연이 커뮤니케이션으로 작동하는 사례에서 “업무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대화도 문자로 이루어지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굳이 대화할 필요성이 줄었다”며 “하지만, 흡연은 여전히 야외에서 같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 대화하면서 인간관계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흡연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소통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명분이 ‘담배’라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