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그대는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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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12일.

대한민국의 덫, 전세사기를 해체하기 위하여

 

 2023년 2월 28일. 전세사기 피해자가 처음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따라 드리워진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지만, 2025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전세사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했다. 중요 지점 중 하나는, 아직도 이 문제가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식되어진다는 점에 있다. 아직도 세상은 전세사기 사건을 ‘중고나라, 당근마켓 사기’와 동일시하며 피해자를 찌른다. 문제 인식이 해결법을 도출하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잡아질 때 우리는 전세사기 해결에 비로소 다가갈 수 있다. 이 글은 2025년 올해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직접 작성했다. 이 글이 독자 분들께 다만 한 번의 재고(再考)의 여지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며,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 발생하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살해라는 공감이 우리 모두에게 스며들 수 있길 희망한다.

 

 -전세사기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1. 전세사기는 현재진행형

2022년 출발한 죽음의 전세사기 열차.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9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큰 사건이다. 그러나 2025년 현재까지도 매달 1000명 이상의 피해자가 신규로 등록되고 있다. 우리 사회엔 공식적으로 3만명이 넘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정부에서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를 포함한다면 훨씬 더 많다. 안타깝지만 피해자 인정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다. 오늘 중심적으로 소개할 사례인 ‘하람빌’ 피해자들 역시 올해 4월 12일에 전세사기 문제를 마주했다.

2. 전세사기 특별법은 왜 대안이 되지 못하나

지난 2023년,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현실 속에서 정부 차원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을 받더라도, 실제 피해자들의 피해를 복구하거나 돕기는 어렵다. 우선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다음과 같다.

1)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2) 임대차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

3) 다수의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의 변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 혹은 예상되는 경우

4) 임대인이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도가 보이는 경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3번까지는 충족이 되지만 4번 조항에서 가로막히게 된다. 쉽게 말해, 임대인의 고의적인 기망 의도가 있음을 피해자들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눈에 선히 보이는 정황 역시도 그 근거자료가 되지 못할 때가 많다.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자 인정이라는 첫 관문부터 좌절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 과정을 뚫고 피해자 인정에 성공하게 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총 3만여 명이다. 그 중 75%는 40대 미만의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책은 크게 세 가지다. 1)20년간 무이자로 전세대출금 상환 2)LH의 경매 등을 포함한 공적 개입을 통한 보증금 구제 3)변호사 수임 비용 지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시피 한다. 1)의 경우, 사실상 이자 면책일 뿐 구제 방안이라 보기 힘들다. 그리고 2)의 경우를 보면, LH에서 실제 매입하는데 성공한 비율은 현재까지 3.6%에 불과하다. 극도로 낮은 성공률이다. 3)의 경우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이야기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4번 조항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선차적인 변호사 수임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지원금은 해당 경우에 대한  환급을 해주지 않으며, 피해자 인정 이후에 발생하는 새로운 수임료에 대한 지원 대책이다.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깡통전세사기전국대책위원회는 1)피해자 인정 장벽 완화 2)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 개정 3)선 구제 후 구상의 원칙 정립 등을 주장하고 있다.

3. 2025년, 전세사기 열차에 탑승하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하람빌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 임차인들은 지난 4월 12일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했다. 그 발단은 건물 사용 승인일(23년 6월) 직후인 2023년 8월부터 미납된 수도요금 때문에 발송된 단수예정통지서 덕분이었다. 연락을 아예 두절한 임대인과 연락을 회피하는 부동산이었지만, 하람빌 임차인들은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돌아온 결론은 임대인이 연락 두절 상태에서 몰래 2월부터 파산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동산은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임차인들에게 숨겼다. 3주 뒤, 해당 부동산은 폐업하고 도주했다.

보통의 경우, 임대차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 보증금 회수를 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한다. 그래서 전세사기의 대부분이 계약기간이 끝난 경우다. 그러나 하람빌은 다르다. 23년 6월에 사용승인이 났기 때문에 하람빌의 모든 임차인은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다. 가장 빠른 계약종료가 9월이다. 그러나 25년 1월, 202호에 마지막 임차인이 들어오자 임대인은 2월에 곧바로 파산절차를 밟았다. 임차인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서’ 피해사실을 일찍 알게 된 것이다. 이 임대인은 하람빌 뿐 아니라 대림동에 건물 두 채를 더 가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직접 알아내고 규명한 결과에 따르면, 총 피해액은 50억, 피해 세대는 70세대에 육박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

 

1. 너와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보통, 우리 사회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보내는 눈초리엔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겠지’라는 감정이 비껴있을 때가 많다. 이는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기 사건들과 전세사기 사건을 등치할 때에 특히 더 많이 발생한다. 충분히 그런 시선은 존재할 수 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문제는 모든 구조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살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1대 1의 전세사기란 없다. 가해자는 조직적이며, 대한민국의 공적인 지위가 있는 곳들에서부터 발생해서 내려온다.

피해 건물인 하람빌 임차인 이서현(26)씨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해자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대출을 진행했던 은행에 연락을 취했다. 돌아온 답변은 “원래 저희 지점은 다른 지역에 개인 대출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점장님의 직접 지시 때문에 대출을 진행했었습니다.” 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계약을 진행했던 부동산 직원이 직접 은행 지점 뿐 아니라 창구 직원까지도 지정을 해주어서 그 은행에 방문했었기 때문이다. 그 은행을 방문할 때는 공인중개사가 직접 차를 운행해서 데려다주기도 했다.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해당 부동산 직원은 1)건물 시가 속임 2)임대인에 대한 거짓정보로 임차인 회유하기 3)선순위 고지 사항 숨김 등의 행적이 있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알기 어렵다. 그것이 계속해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매달 1000명 가까이 발생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이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는 덫에서 개인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전세사기 문제 해결이 공공적으로, 정책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사기에 적극 공모하는 공인중개사 뿐 아니라 아무런 책임감 없이 대출을 진행하는 금융권 역시 전세사기 문제의 가운데에 놓여있다.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나 인적 사항만 조사하고 해당 대출 대상 건물 임대인의 자료는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람빌의 한 임차인은 1월에 대출심사가 끝나고 대출을 받아 전입을 했지만 바로 그 다음달인 2월에 임대인이 파산을 진행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는 “은행은 도대체 임대인의 어떤 정보를 조사한 것인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한 임차인은 계약 당시 세무사와 동행했으나, 세무사 역시 건물 등기 등의 자료에서는 어떠한 문제점도 찾아내지 못했고 그대로 계약을 진행했다.

2. 그것, 전세사기가 맞는가?

통상적으로, 임대인의 급변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와 전세사기에 대한 구분을 어려워한다. 임대인이 정말 재정적으로 어려워져서 소위 ‘보증금 돌려막기’를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전세사기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일순 타당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기 위한 4번 조항이 난제가 되는 것이며, 논쟁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람빌의 경우를 보자. 하람빌 임대인은 앞으로 있을 경찰조사 등에서 ‘재정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취지를 일관적으로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 회전율이 낮고, 그로 인한 재정난이 심각해져서 어쩔 수 없이 파산을 진행했다는 취지다. 그것이 그가 면책을 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고, 또한 사회적으로 그런 경우라면 어쩔 수 없다는 동정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실상을 바라보자. 그는 의도적으로 모든 임차인과의 연락을 두절했고, 공인중개사는 협업하여 파산 소식을 숨겼으며, 하람빌이 사용승인이 난 두 달 뒤부터 수도요금을 미납해왔다. 또한, 하람빌을 포함한 총 세 건물에 11, 12, 1월에 총 다섯 명의 새 전세 입주자가 생겼음에도(월세는 더 있음) 2월에 계약이 끝나는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하며 파산을 진행했다. 해당 임차인이 소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아 나머지 모든 건물의 임차인들은 하람빌이 상황을 인지하기 전까지 파산을 인지하지 못했다. 임대인은 파산 결정 이후에도 임차인들을 속이며 묵시적 연장을 요청했고, 원래라면 끝날 계약이었지만 계약이 묶여버린 사람들도 있다. 정상적인 과정에서, 2월에 파산을 결정할 상황이라면 1월에 임대인을 받는 것은 애초에 의도적인 기망행위인 것이다.

즉, 임대인은 당연히 어쩔 수 없었음을 어필하겠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분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 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위한 4번 항목은 임대인의 기망 의도를 임차인이 해명하게끔 명시해놨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가 피해자 진입장벽을 낮추는 특별법 개정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하람빌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교묘한 사각지대 속에서 고통을 받는 피해자들이 많다. 그들을 무엇이라 호칭해야 할까. 피해 호소인? 아직 규정되지 못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을 가진 존재? 분명한 것은 그들은 그 시선 속에서 이미 모든 일상이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3. 우리의 삶은 어떻게 산산조각 났는가

대림동 하람빌에 사는 이서현(26)씨는 20살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안 해본 알바가 없이 처음에는 반지하에서 시작한 자취인생이었다. 학업과 취업 때문에 성인이 된 후로 늘 서울에서 살아야만 했다. 반지하에서 그 다음은 1층, 그 다음은 2층, 그 다음은 3층에 집을 구했다. 점점 지하를 벗어나 하늘에 가까워지는 층수는 자신의 발전을 대변하는 듯 했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하람빌 4층에 집을 구한 그는 전세사기를 당했다. 대학을 과탑으로 졸업하고 만년 장학생으로 다닌 그는 매사에 꼼꼼한 성격이다. 그는 “내가 멍청해서 이런 일을 당했을까, 내가 조금만 더 신중하고 꼼꼼했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며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자책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미 지독한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울면서 일을 하는 중이다”라며, 더 이상 직장에서의 업무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남의 돈을 벌어다 주는 과정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거의 잠을 자지도 못했고,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몸이 약했던 그는 연초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중환자실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사선을 넘었다가 돌아와서 몸을 추스리던 중에 맞닥뜨린 전세사기는 몸 뿐 아니라 마음마저 무너지게 했다. 그가 종종 말하는 “그냥 그 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더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말은 전세사기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영원히 비극적인 모순으로 그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람빌의 다른 임차인인 장모씨(28)는 전세사기를 인지한 순간을 묻는 질문에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순간 벙쪘다. 정신을 차리고는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어 현실을 부정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9월에 만료되는 전세 계약 이후의 인생 계획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건물 내 임차인들과 가끔 식사도 하고 시간도 보내며 마음을 다잡으려 하지만, 무력감에 보통 집에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4. 이건 구조의 문제다

또 같은 건물 임차인인 홍승범(28)씨는 문화재 발굴조사 연구원이다. 그는 하람빌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다. 회사 업무는 고되다. 요즘은 날이 많이 풀려 더욱 힘들다. 그는 전세사기를 마주했을 때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힘들었지만, 같은 건물 구성원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이 되기 위해서도 피해자들이 직접 사기혐의를 찾아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다. 정부가 마련해주는 주거지원 대출을 받아 들어왔지만 피해가 발생하니 알아서 사기 당한 혐의를 증명하라고 말하는 이 상황이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세제도는 국가의 주거정책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국가시스템이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피해자가 3만명, 사망자가 9명이라면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가.”라며 구조의 문제를 꼬집었다.

이서현씨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는 “전세사기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세무사를 통해 계약서를 검증했을때도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한 건물이 바로 저희 건물입니다. 그런 건물에23세대의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도 찾지 못한 허점을 저희 청년들이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정부가 보증해주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고, 국가가 인증한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소개받아 계약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희는 열심히 알아보고 찾아보며 전재산을 입금한 죄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죄라면 무지한 죄겠지요. 허나 작정하고 속이는 것을 저희가 어떻게 알아내겠습니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세무사가 볼 수 있는 건물 등기 등의 문서는 정상적이었다. 건물 시세에 대한 중개사의 속임이 없었다면, 근저당 액수를 제외하고서는 문제삼을 것이 없었다. 그는 곧 이어서 “주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새로운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 조금 더 실질적인 대책을 내세웠으면 좋겠다. 두루뭉실하게 ‘지원을 하겠다’가 아닌,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공공요금 감면제도, 피해자 인정제도, 피해자 지원제도, 우선권행사 등을 좀 더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을 부탁드린다. 또한 사기를 공모한 공인중개사에게 더욱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하며, 은행도 마찬가지로 책임감 없이 무분별하게 대출해주는 것을 멈춰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 그냥 살면 살아질까

하람빌 22세대 청년들은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며 열심히 세금을 내며, 평소처럼 저축하며 살아간다. 전세사기 전과 비교했을 때, 형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게 무엇일까. 다들 자신의 꿈이 있었다. 미래 계획도 있었다. 20대 후반을 지나는 나이,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싶었다. 피해자들은 ‘투기를 한 적도, 투자를 한 적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 집을 구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살기 위해 내린 선택의 대가로 모든 꿈을 잃었다. 운이 좋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도, 그것은 한 밤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비관은 쉽사리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람빌은 하나의 공동체다. 전세사기 대응 실무팀을 꾸려서 11명이 참여 중이며, 팀장급 회의로 4명이 따로 꾸려져 있다. 그리고 서로 돕고 지내기 위해, 서로 살려 주기 위해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는 관계가 됐다. 우스갯소리로 ‘1억으로 친구 사귀었다’라는 말도 늘어놓는다. 그리고 배드민턴 소모임, 코인 노래방 소모임 등을 만들어서 퇴근 후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도모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살아서 억지로 넘기는 시간이 의미가 있을까.

-전세사기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이 되려면

1. 실효성 없는 피해자 구제 대책, 더 강화해야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전세사기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며 정책적으로 극복되어야 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실제 필요할까? 권지웅 前경기전세피해지원센터장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대책을 제시한다.

1) 위험한 전세 없애기

근본적으로 위험한 전세건물의 문제 자체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이 경우 총 네 가지 해법이 제시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고전세가율 임대차는 보증보험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주택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을 경우, 향후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보증금 반환이 불가하다. 하람빌의 사례가 그러한데, 토지와 건물의 공시가를 합하였을 때 하람빌의 현재 가치는 대략 18억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하람빌 전체 보증금만 해도 18억을 상회한다. 거기다가 건물 근저당은 14억 가까이 잡혀 있다. 이는 공인중개사가 작정하고 건물 시가를 속여먹은 결과이다. 이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이다. 두 번째는 신탁부동산 임대차의 경우 임대차 계약 사전 등록 의무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신탁 문제가 얽혀들어갈 경우 피해가구들은 피해회복이 몇 배로 더 어렵다. 세 번째는 다가구, 다중주택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가구 건물의 경우 개별등기가 아닌 건물의 통등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렇게 구분등기되지 않는 주택은 등록 의무를 부과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건축법을 정비하여 개별등기 불가 주택은 신축을 아예 제한하자는 방안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무차별적인 주택 공동담보를 막자는 것이다. 임차보증금을 공동담보채권보다 우선 배당하거나 주택에 대한 공동담보는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하람빌의 경우도 또한 이 경우에 대한 피해가 있는데, 본래 22년 토지에 잡힌 근저당을 23년 건물이 지어지자마자 공동담보로 엮어 14억의 근저당이 완성되었다.

2) 전세 대출 제도의 근본적 개선

전세를 얻는 사람들은 보통 전세 대출을 진행한다. 이는 특히 소위 목돈이 없는 2030 청년 세대에서 도드라진다. 그리고 전세 사기 문제에서는, 전세 대출 제도의 빈틈이 곧바로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권지웅 전 센터장은 “전세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전세사기를 당하게 되면 임차인들은 주거위기와 신용위기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라고 하며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해법으로 ‘임대인에게 전세대출 원금 상환 의무 부여’라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통상적으로 전세 대출은 대출 신청 임차인의 명의로 이루어지지만, 그 대출금은 임차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임대인에게 전달된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소위 ‘만져본 적도 없는 돈’에 대한 원금 상환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임차인은 이자 상환의 의무만을 가지고, 임대인에게 전세대출 원금 상환 의무를 지우게 된다면 효과적으로 전세 사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권 전 센터장은 그러한 업무를 전담하는 전세금융공사라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할 것 역시 제안했다.

3) 현행 상황에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에 대한 책임 강화

권지웅 전 센터장은 앞서 2번에서 제시한 방안이 실현되면 문제가 크게 해결되긴 하겠으나, 그 전에 선차적으로 대책을 세운다면, 그것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보증금 반환에 대한 책임을 강화함으로서 임대인이 함부로 임차인의 보증금을 건들 수 없게 하자는 취지다. 구체적 방안의 첫 번째는 보증금 반환 지연 이자를 월 1%씩 부과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이 없을 경우 5%의 지연이자가 부과되고,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 연 12%수준의 지연이자가 청구된다. 이를 보증금 반환 지연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연 12%의 지연이자를 곧바로 부과하자는 취지다. 임대인의 자발적 반환을 압박하자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는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 동의권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현행법상 건물 매매 과정엔 임차인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소위 깡통전세의 경우,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매매된다면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해진다. 권지웅 전 센터장은 이는 금전을 제공한 사람(임차인의 보증금)의 동의 없이 채권이 이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의 동의를 받도록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네 번째로 임대인 파산 시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대인이 뒤에서 몰래 보증금을 다 빼돌리고 파산을 신청하여 채무를 면책받는 행위를 근절하자는 취지다. 향후로는 임차보증금은 파산 면책 제한을 못박고, 파산 사실은 임차인에게 필수적으로 사전 고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4) 대통령 직속 임대차제도개선위원회(가칭) 설치

권지웅 전 센터장은 이런 대규모 전세사기 문제들이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제도의 여러 허점을 드러냈으며, 주택임대차 제도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고 법, 주거, 경제, 행정 등 여러 분야와 연결된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실제 전세사기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대통령 직속 임대차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주택임대차제도는 현행상 법무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처로 소관이 나뉘어 있어 체계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대통령 직속의 기구를 만들어 범부처 차원의 대응을 효과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권 전 위원장은 해당 기구가 여러 정부 부처와 주택정책, 법학, 경제학 등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임대차제도 개선안을 검토하고 범부처 협력 및 진행사항을 효율적으로 검토한다면 전세사기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 이재명 정부와 여당은 지난 시기 주장해온 ‘선 구제, 후 구상’의 원칙 이행해야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38회에 걸쳐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힘과 대조되게 더불어 민주당 역시 여러 인사들의 입을 빌려 전세사기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2024년 5월 17일 있었던 제 251차 최고위원회의 전체발언에서

“민주당은 28일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것입니다.”라면서 “‘선 구제 후 구상’ 내용을 담은 개정안 통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더 이상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민주당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발언을 했었다.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이재명 당시 당대표의 원칙은 ‘선 구제 후 구상’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민주당의 다른 인물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2024년 5월 31일에 있었던 제 257차 최고위원회의 전체발언에서 박정현 당시 최고위원은 특별법 개정을 거부하는 정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어째서 전세사기 피해 청년들에게 이렇게 박절합니까”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라는 말로 입을 뗐다. 그리고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선구제 후회수’가 담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22대 국회에서 신속히 다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선 구제 후 구상’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21대 대선 과정에서 이 내용은 사라졌다. 이재명 캠프는 처음에는 전세사기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다가, 캠프 소속 전세사기 위원회가 출범한 이후에야 전세사기 근절에 대한 내용을 담아냈다.

그러나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에 주장해오던 ‘선 구제 후 구상’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소위 당선 전과 당선 후의 입장이 다를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은 여전히 반드시 해결하겠다라는 답변을 내놓고 있지만, 명확히 ‘선 구제 후 구상’의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이제 스스로 한 말을 지킴으로서 국민과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의 전세사기 문제 해결 발언 이행을 요구하며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전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하람빌의 한 임차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풍파는 누구에게나 온다고, 풍파를 타고 넘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들 한다. 물론 그렇게 버틸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풍파를 한계까지 타고 넘어볼 테니 제발 방파제 하나 세워달라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기댈 곳 역시 같은 피해자 서로의 어깨밖에 없는 우리에게 ‘정책’이라는 이름의 굳센 방파제가 세워지길 바란다. 이런 피해가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전세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전세사기 문제는 사회적 재난이다. 그 재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피해 형태와 규모도 제각각이며 그 속에 쌓여있는 개인의 안타까운 서사 역시 셀 수 없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는 피해자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오늘 하루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버텨내는 여러분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이야기 띄우고 싶다.”

이 글이 전세사기 피해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타파하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투자가 아니었다. 주거는 다만 생존의 문제다. 다시는 이런 종류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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