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다
“요즘에는 서울역에 일찍 가도 기차 타기가 힘들어. 아들이 뭘 깔아줬는데, 어려워서 들어가보지도 못해. 학생들은 다 인터넷으로 한다면서. 나는 처음 알았어.””
박만복(가명) 할아버지는 지난달 처음 스마트폰으로 KTX를 예매했다. 디지털교육 홍보지를 보고 우연히 들어선 스마트 구로 홍보관. 1:1 수업을 받은 지 한 달, 이제는 질문도 하고, 반복 학습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재미있어. 잘 안 하던 걸 배우니까 계속 오고 싶지.” 이들이 디지털 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은 단지 키오스크 사용법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박만복 할아버지는 교육 시간에 배운 대로 코레일톡 앱을 열고, 출발역과 도착역을 눌러 날짜를 선택했다. 화면이 낯설었지만, 지난 수업에서 따라 했던 절차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몇 번을 눌러보다가 결국 결제까지 완료했을 때, 혼자 해냈다는 것에 벅찬 감정이 들었다. “근데 안 하면 자꾸 잊어버려요. 다음 주에 또 와야죠.”

디지털 교육이 바꾼 것
“나는 이 동네 사람은 아닌데, 길에서 우연히 보고 왔어요. 한 번 올 때 궁금했던 걸 다 물어보는 거야. 그래도 이런 게 무료니까 얼마나 좋아. 너무 감사하고 그래요.” 박만복 할아버지는 배우러 가는 것이 즐겁다.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서, 잘못 조작할까 봐 손대는 것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간다.
1:1 디지털 수업은 반복을 통해 자신감을 쌓는 과정이었다.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해도 부담이 없고, 틀려도 다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 실수할까 불안함이 앞서고 위축되는 날이 줄었다. 배움의 성취감을 넘어, 디지털 사회에 발을 디딘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잘은 못 해.” 라면서도 배우지 않은 것도 천천히 시도해볼 용기가 생겼다.
필요한 건 ‘디지털 여유’
스마트 구로 홍보관은 서울시의 디지털배움터로 쓰이다가 종료됐다. 디지털교육은 키오스크·태블릿을 다뤄보는 체험형 공간만 남았다. 홍보관을 담당하는 송정희 주무관은 말한다. “이전까지는 강사 한 명, 보조 강사 한 명에 어르신 대여섯씩 모아 하루 네 타임 정도 진행했었는데, 교육이 사라지고 체험존만 있으니까 많이 아쉬워하시죠.” 홍보관의 체험존에는 강의가 없는 날에도 어르신들이 찾아온다. “그냥 키오스크 화면 하나라도 더 눌러보려고 오시는 거예요. 그렇게 2-30분 연습하고 가는 분들이 많죠.” 단지 ‘기능 습득’ 때문이 아니라, 마음 편히 도전해볼 수 있는 곳이라 자주 찾게 된다.

휴대폰 인증 시간 1분, 키오스크 초기화 30초.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에 대해 박만복 할아버지는 이야기한다. “나도 해 보려고 하는데 누가 뒤에 줄만 서면 미안해서… 나한테만 그 시간이 빠른가 봐.” 노인들은 낯선 것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배로 든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키오스크에 ‘천천히 모드’ 기능을 넣거나, “여긴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같은 문구를 띄우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문턱이 낮아진다.
반복과 실전 사이, 공백을 채우는 건 ‘사람’
배운다고 해서 일상에서 곧장 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키오스크 사용 중 잘못 눌렀을 때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어떤 메뉴를 눌러야 할지 헷갈리는 일이 많다. 현장 지원이 필요하지만, 강사나 안내자가 24시간 옆에 붙어 있을 수 없다. “하나 잘못 누르면 화면이 아예 처음으로 가버리니까… 답답했지.”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이 간극을 인식한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A씨는 “디지털 교육은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천천히 하면 다 잘 하세요. 단골 손님들은 어플까지 깔아오셔서 쿠폰도 쓰시고요. 그래서 제가 바로 해드리기보단, 여유가 되면 키오스크 쓰는 법을 알려드리려고 하죠.” 배움과 일상의 공백은 주변의 도움으로 채울 수 있다.
교육의 ‘확산’이 아닌, 삶의 ‘확장’으로
디지털배움터가 1,000곳에서 36곳으로 줄면서 교육받으러 가는 길이 쉽지 않다. 현재 거점센터가 없는 지역은 파견 교육으로 메우지만, 이동이 불편한 고령층에게는 교육장소에 대한 접근성도 또 다른 장벽이다. 어르신들에게 무료 독감 예방접종은 익숙하다. 친절히 “가보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동네 병원마다 포스터가 붙고, 우편 안내가 온다. 디지털배움터나 1:1 스마트폰 수업 같은 교육은 인터넷으로 공지되는 경우가 많다. 신청도 온라인으로 해야 한다.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정보가 닿지 않는 구조다.
디지털 세계라는 새로운 문턱 앞에 멈춰선 노인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다. 하지만 디지털 배움터 예산은 2024년 대폭 축소됐다. 공급자 중심의 효율 논리가 우선시되며, 반복 학습의 필요성과 실제 수요는 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현장은 말한다. “교육이 끝났는데도, 계속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뭔가 더 배우고 싶어 하시죠.”
현재의 디지털 기술은 특정 세대를 배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은 삶의 영역을 넓혀주는 통로지만, 여전히 많은 노인들에게는 낯선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디지털 교육은 단순히 기능을 익히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 디지털을 통해 일상과 연결되고, 사회 속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교육을 늘리는 것보다도 더 절실한 것은 여유다. ‘왜 아직도 못 하느냐’고 묻기보다, ‘왜 기다려주지 않느냐’고 물어야 한다. 삶의 확장으로서의 디지털 교육이란, 결국 모두가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강, 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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